Decon’s why: 암호경제학 연구소 Decon을 시작하는 이유

by | Feb 2, 2019

감명 깊게 봤던 영상 중에 Simon Sinek의 ‘Start with why’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아마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TED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 중 하나이고, 책으로 나오기까지 했죠.

이 영상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위대한 조직, 위대한 리더는 모두 항상 ‘Why’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것을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조직의 신념,믿음, 사상, 비전에 해당하는 ‘Why’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암호경제학 연구소 Decon도 ‘Why’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Decon을 설립한 이유는 암호경제학 연구를 통해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암호경제학이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암호경제학

암호경제학이란 블록체인 위의 경제 시스템의 ‘설계’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암호경제학은 정말 단순하게 말하면 ’상벌점 제도’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상벌점이라는 인센티브를 사용하듯이, 암호경제학자들도 블록체인 내의 참여자들이 전체 네트워크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인센티브와 규칙을 설계합니다.

암호경제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암호화폐/암호자산 시장 예측이나 투자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는 아닙니다. 암호화폐를 매개체로 돌아가는 네트워크의 경제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IT 서비스를 만들 때 경제학이 필요한 시대

그렇다면 암호경제학이라는 건 왜 필요할까요? 블록체인은 그냥 개발자들이 뚝딱뚝딱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일반적인 인터넷 서비스와는 굉장히 다릅니다. 블록체인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하나의 조직입니다.

이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리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에는 질서가 필요하고, 질서를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고, 그 규칙을 강제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리더나 책임자가 없으면 어떻게 조직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조직에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중앙 주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탈중앙화된 네트워크(Decentralized network)라고 부릅니다.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설계한다는 것은 중앙 주체 없이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수많은 익명의, 독립적인 개인들이 전체 네트워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암호학이나 컴퓨터 공학으로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설계해야 합니다. 인센티브 구조와 경제 시스템을 세밀하게 설계해서,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전체 네트워크가 성장할 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빵집 주인,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이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요.

요약하자면, 중앙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 때는 반드시 경제학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암호경제학의 첫번째 작품, 비트코인

암호경제학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비트코인입니다. 안전하면서 동시에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것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인센티브 구조를 사용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비트코인은 채굴자들이 비트코인 장부 조작을 시도하려면 엄청난 양의 비용이 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보상을 BTC라는 자체 화폐로 지급해서 참여자들의 인센티브를 일치시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채굴자들이 비트코인 장부를 정직하게 검증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비트코인이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암호경제학이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비트코인 이후로 암호경제학은 블록체인 시스템의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이 끝이 아니다

사실 비트코인이 유도하려던 행동은 단순했습니다. 참여자들이 정직하게 거래를 검증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그 이후로 비트코인의 시스템을 응용해 훨씬 더 다양한 행동을 유도하려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등장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자신이 믿는 미래 결과에 베팅하거나, 자신의 남는 저장공간을 판매하거나, 컨텐츠를 올리고 평가하는 등 훨씬 다양한 참여자가 존재하는 높은 수준의 협력을 목표로 합니다. 비트코인이 은행이라는 중개자를 탈중앙화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개자들을 탈중앙화하려는 시도들이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는 네트워크일 수록, 암호경제학적 설계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동시에 중요해집니다.

암호경제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

저는 대학교 새내기 때, ‘경제원론’ 수업을 들으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데, 인간은 합리적이지가 않잖아. 가정이 틀렸는데 이론을 배워서 어디다 쓰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의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비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고 세운 이론들은 실전에서 우리에게 판단의 기준이 되어줍니다. 경제학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보다 훨씬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암호경제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센티브는 만능이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인간은 항상 인센티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재적 동기를 해치는 경우도 있죠. 많은 분들이 암호경제학, 혹은 토큰 이코노미라는 말에 회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Decon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암호경제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인센티브가 전가의 보도마냥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더라도, 잘 설계된 기술과 경제 시스템이 결합되어 있다면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탈중앙화 네트워크는 수익을 독점하던 기존 중개자들을 없애고 모든 참여자들이 Win-win하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더 나은 경제 시스템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암호경제학은 어렵다

Decon 멤버들은 nonce라는 커뮤니티에서 만났습니다. 다들 경제/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블록체인 내부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같이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경제 시스템 설계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하면 토큰 발행량을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센티브의 가치를 네트워크의 가치와 연동할 수 있을까?
어떻게 토큰의 가격변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네트워크의 여러 경제적 변수들을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깊게 공부하면 할수록, 코어 플랫폼, 미들웨어부터 Dapp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막론하고 경제 시스템 설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암호경제학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모델링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블록체인 프로토콜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남용되거나, 구성원의 참여를 제대로 유도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공학에 기반을 둔 규칙을 설계하되, 인간이 어떻게 그 규칙과 상호작용하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개인 컴퓨터의 남는 저장 공간을 사고 파는 네트워크라고 해볼까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이 토큰을 받고, 저장 공간을 쓰는 사람은 토큰을 내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제 시스템 설계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공급자가 저장 공간에 대한 판매를 하고나서, 막상 저장한 파일을 돌려받으려고 할 때는 오프라인인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저장된 파일의 일부를 잃어버릴 수도 있죠. 특정 기업이 관리하는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자율적인 개인들의 네트워크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암호경제학자는 보증금에 대한 규칙을 설계합니다. 판매자에게 미리 보증금을 받고, 만약 사용자가 파일 다운로드를 요청할 때 온라인이 아닌 경우에는 보증금을 깎아버리는 등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보증금은 언제 어떻게 줄 것인지, 사람마다 액수를 다르게 할 것인지, 이 보증금 제도가 전체 토큰 유동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등 수많은 문제들이 또 생겨납니다. 암호경제학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현업에 계신 분들과 만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좋은 자원, 좋은 팀, 좋은 기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 시스템 설계가 미흡한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저희가 만났던 어떤 프로젝트는 ICO로 많은 돈을 모았는데도, 아직 제대로 짜여진 경제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는 ‘왜 이 시스템에 토큰이 필요한지’ 물어보니 토큰의 가치나 유용성에 대한 설계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거래소에서 현금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직 암호경제학 설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과 함께, 암호경제학 설계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암호경제학 연구는 전세계적으로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입니다. 아직 하나의 학문 분야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적절한 이론, 설계를 위한 도구, 실제 케이스에 대한 데이터들이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탈중앙화와 암호경제학이 가지는 가능성 자체를 부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저희는 암호경제학을 깊게 연구할 전문가 집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Decon을 설립한 이유입니다.